칼럼 효의 매력에 빠지다 (제1회)-----네안데르탈인의 화석부터 시작되는 노인 이야기

작성일 21-09-14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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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효의 매력에 빠지다 (제1회)

네안데르탈인의 화석부터 시작되는 노인 이야기 / 박희원 교수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1-09-02 [10:05]

원문: http://m.withtimes.co.kr/9897

 

효란 무엇인가? 먼저 효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다.” 이는 한나라의 허신이『설문해자』라는 자전류에서 해설한 의미로 우리의 국어사전에서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효(孝), 효도(孝道)에 대하여 ‘부모를 섬기다’, ‘효도하다’, ‘맏, 맏자식’, ‘본받다’ 이외에 ‘상복(喪服), 상복(喪服)을 입다’, ‘거상(居喪)하다’, ‘제사지내다’로 풀이한다.

 

언어는 행위가 드러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다고 한다면, 효는 글자에서 보이기 이전부터 있어 왔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역사에 드러난 효행 이전에 이미 효는 있어 왔다는 논리를 펴고 싶은 까닭이다.

 

전적에 드러난 효의 이야기는 B.C. 1,100년에서 600년대의 주나라 금석문을 비롯하여 『상서』와 『시경』등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시작된 효의 이야기는 통치 기술의 하나로 쓰이기도 하고, 민간에서 인간의 사랑과 협력을 가르치는 인성교육 예법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이런 연유로 효에 관한 이야기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인권을 무시하고 가부장적이며, 봉건적이고, 권위적이라는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현대는 과학적이고, 민주적이며, 자유주의, 개방화된 근대에 이 무슨 해괴한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냐고 외치면서 말이다.

 

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는 독자를 위하여 이제부터 필자가 만난 효의 본질적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효의 실상은 문서로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라샤펠오생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연구한 결과 노령으로 관절염을 앓고, 어금니가 빠진 상태로 오랫동안 살았던 노인의 화석으로 밝혀졌다.

 

1950년대 이라크의 샤니다르 유적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 역시 젊어서 크게 다쳤고, 누군가의 보호 아래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았다는 결론을 얻었으며, 터키 북동쪽 조지아의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인류 화석 역시 노인이 빙하기 전에 이가 다 빠진 상태로 살아 있었다는 연구가 있다. 

 

이러한 연구는 무려 1백8십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화석 이야기다. 현생 인류도 우리의 이야기도 아닌데, 무슨 뜬끔 없는 이야기냐고 힐난할 수 도 있겠지만, 학자에 따라 견해는 다르지만 현생 인류와 가장 가까운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을 보면 이 화석에서 효의 실상을 알 수 있다.  

 

필자는 효는 이런 배경에서 우리의 정서로 드러난 것이지 인위적이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탄생된 이데올로기적 비판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이거나 강요에 의한 효가 아니라 인류의 시초부터 자연스럽게 행하여지던 이타적 행동이 효의 근원이요. 이를 통한 사회 구성의 원리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문헌 사례로 『구약성경』 과 「출애굽기」에 있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당시 군집생활을 하던 시기에 대단위 군중의 합심을 위하여 효행의 원리가 필요했음을 알 수 있는 문헌이다.  

 

또한, AD 62년경 쓰여진 디모데전서 5장 4절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를 보더라도 효의 유용성을 알 수 있으며,  효의 장구함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유가(儒家)에서 효경의 효는 정치사상의 배경으로 제공해 온 것과 달리 인간사회에서 협력하고 사랑하도록 하는 해법이 효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유가의 정치사상으로 인하여 효의 가치는 우리의 반만년 역사 속에서 지탄과 찬사를 동시에 받으면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효(孝)가 이러한 지탄과 찬사의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고령사회에서 효(孝)가 함께하는 사회의 지렛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효에 대한 연구를 하면 할 수록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소개하고 싶다.

 

전통적인 효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신체를 잘 살피고 성공적 삶을 통해 부모의 이름을 드러내고, 그 이름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만 실천하여도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부해지겠는가? 게다가 “부모의 뜻을 따르고, 사람의 일을 잘 계승하는 일”이 효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실천한다면, 나와 우리가족은 정말 멋진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않겠는가?

 

바로 이런 것들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효일진대, 효에 대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을까 싶다. 앞으로 이러한 효의 매력에 여러분도 함께 빠져 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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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원 교수(성산효대학원대학교,효교육학과) 

박희원 교수는 중앙대학교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고, 성산효대학원대학교에서 효학박사를 취득했다. 출판사업과 서울시립 문래청소년수련관에서 근무하였으며, 현재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천시에서 설립한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 센터장을 겸직하고 있다. 한국 효학회 총무이사(사무국장), 국제지식포럼(ICKA) 부회장, 통합인문학회 부회장, 인천광역시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사)한국유권자중앙회 운영위원, 성산종합사회복지관, 동구건강가정다문화지원센터의 운영위원 등으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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